어느 겨울날 저녁, 손끝이 시릴 만큼 바람이 차던 날이었습니다. 장을 보려고 동네 시장을 걷던 중, 한 구석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비 내리는 호남선’. 노점상 아주머니가 손님도 없이 앉아 작은 스피커로 틀어놓은 음악이었죠.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아주머니는 “요즘은 이 노래라도 들어야 덜 추워요”라며 웃어 보였고, 그 순간 제 마음속에서도 얼어 있던 무언가가 조금 녹아내렸습니다.잠시 뒤 눈치도 없이 흥얼거리던 제 코러스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슬며시 하나둘 멈춰 섰습니다. 어떤 청년은 장바구니를 손에 든 채 리듬을 타고, 마스크를 눌러쓴 한 어르신은 조용히 후렴구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이름도, 사는 집도, 사연도 모르는 사람들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