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실

안동역에서 멈춘 시간―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렸던 스물일곱의 겨울

창밖문지기 2025. 12. 13. 17:03

기차역이라는 공간은 늘 이별의 냄새를 품고 있습니다.
플랫폼 위에 서면 설렘과 아쉬움이 동시에 공기를 채우고,
기차가 떠난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진성의 「안동역에서」를 들을 때마다, 저는 스물일곱 살의 어느 겨울로 돌아갑니다.

그해 겨울, 안동역은 유난히도 차가웠습니다.
두툼한 외투를 입고 있어도 발끝으로 냉기가 스며들었고,
기차가 들어올 때마다 플랫폼에 울려 퍼지는 쇳소리가 마음을 더 허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역에서 헤어졌습니다.
“금방 올게”라는 말은 늘 그렇듯 아무 약속도 되지 못한 채 공중에 흩어졌고,
기차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저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그날 이후로 제 마음 한켠은 그 역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진성의 「안동역에서」 속 가사는 마치 제 이야기를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안동역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그 한 줄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동시에 껴안는 일이었습니다.

스물일곱의 저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었고,
기차가 다시 들어오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내려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동역은 제게 단순한 역이 아니라,
희망과 체념이 교차하는 마음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고, 결국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다림이 제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안동역에서」를 들을 때마다 저는 다시 그 플랫폼에 서 있는 기분이 됩니다.
차가운 바람, 떠나가는 기차, 그리고 혼자 남은 스물일곱의 나.

이 노래가 더 깊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이별을 원망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 때문입니다.
진성의 목소리는 울부짖기보다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기다렸지만, 그래도 살았다”라고.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지금의 저는 그때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되었고,
기다림이 반드시 보상받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기다림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도 함께 배웠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저는 사랑의 무게를,
사람을 마음에 들이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안동역에서」는 단순한 이별 노래가 아닙니다.
이 노래는 기다림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돌아오지 않은 사람 대신, 그 시간을 견뎌낸 나 자신을 위로하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돌아오지 않은 그 사람보다,
그 자리에 서서 끝까지 기다렸던 스물일곱의 나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해줍니다.
“그때의 너도, 참 애썼다”고.

안동역에는 더 이상 기다릴 사람이 없지만,
그곳에 남겨진 기억은 지금의 저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기차는 떠났지만, 그날의 기다림은 제 인생 한 페이지로 남아
이 노래가 흐를 때마다 조용히 다시 문을 엽니다.

by.창밖문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