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말이 마음을 울리는 순간 — 트로트 가사에서 발견한 나의 이야기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런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며칠 전이었어요. 일 때문에 지친 몸을 이끌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창문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을ぼ듯 바라보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잔잔한 트로트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너무나 평범했죠.
“사는 게 다 그렇지…”
그 단 한 줄이 제 마음을 찌르듯 건드렸습니다. 특별한 표현도 아니었고, 시적인 비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마치 누군가 제 하루를 조용히 들여다보고 위로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고, 버스의 흔들림 속에서 눈가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평범한 말도 진심을 만나면 예술이 되고, 가사가 마음에 남는 건 단어 때문이 아니라 ‘내 경험이 그 말에 스며들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 일상의 말이 노래가 될 때 일어나는 기적
트로트 가사에는 거창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대 잘 있나요”
“보고 싶어요”
“다 그런 거죠, 인생이란 게”
그런데 참 이상하죠.
이 흔한 문장들이 노래 속에서는 전혀 다른 울림을 가집니다.
얼마 전 저는 한동안 마음이 복잡해 밤마다 뒤척이던 시기가 있었어요. 잠든 집안에 혼자 불을 끄고 누워있으면,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졌다가 무거워졌다가를 반복하던 그런 시간이요.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한 가수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잘 지내나요”라고 노래하더군요. 그 단어 하나가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인사일지 몰라도, 그날의 저에게는 잊고 있던 마음을 건드리는 말이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묻지 못했던 그 말을, 노래가 먼저 제게 건네준 것이었죠.
순간 저는 마치 누군가 다정하게 제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 감정이 언어에 스며드는 방식
언어학 책에서 “일상어는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너무 자주 쓰이기 때문에 특별함이 사라졌다는 뜻이었죠.
하지만 저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 말은 음악 앞에서는 예외다.
리듬이 단어를 감싸고, 선율이 문장을 흔들어 깨우고, 가수의 감정이 단어 사이를 촘촘히 채우면, 평범한 말이 마법처럼 변합니다.
‘보고 싶어요’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문자로 볼 때는 그냥 네 글자였지만, 어느 새벽 트로트로 들었을 때 저는 그 말 안에 수많은 감정을 발견했습니다.
그리움, 후회, 원망, 애틋함…
마치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 자체가 들리는 것 같았죠.
이런 감정의 변화는 결국 듣는 사람의 경험과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가사가 단순해질수록, 우리는 그 여백에 더 많은 개인적 기억을 채우게 됩니다.
■ 공감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위로
트로트가 특별한 이유는 엄청난 문학성을 자랑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을 통해 공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힘들었지?”
“괜찮아질 거야.”
“그래도 살아야지.”
저는 누군가 이런 말을 하면 오히려 울컥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같은 문장을 트로트 속에서 들으면 그 울컥함이 훨씬 더 깊어집니다.
노래 속 위로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곁에 앉아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느낌만 전해줍니다.
어느 날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힘들었던 날, 혼자 방에 누워 무작정 라디오를 켜놓고 있었는데, 가수가 말했죠.
“그래도 살아야지…”
그 순간 이상할 만큼 마음이 단단해졌습니다.
누가 대신 말해주지 않았다면, 제가 제 자신에게 하지 못했을 말이었으니까요.
■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여백의 아름다움
트로트 가사의 가장 뛰어난 점은 ‘여백’입니다.
말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듣는 이가 자신의 경험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가사 한 줄—
“그리워요”
저는 그 세 글자 속에 여러 얼굴이 떠오릅니다.
젊은 날 한낮의 햇볕처럼 반짝였던 사람,
멀리 떠나 이제는 연락조차 닿지 않는 친구,
그리고 나 자신에게조차 솔직히 말하지 못했던 마음들….
이 단어 하나가 이렇게 많은 장면을 불러올 수 있는 이유는, 트로트가 감정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감정이 들어갈 ‘통로’를 남겨두죠.
듣는 사람마다 각자의 기억으로 채우는 방식, 그것이 바로 트로트의 언어가 가진 힘입니다.
■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예술
트로트를 들으며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말들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평범한 말도, 진심과 경험을 만나면 시가 되고 음악이 됩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노래를 들을 때면 가사 한 줄을 가만히 음미합니다.
그 속에 오늘의 나, 과거의 나, 잊어버린 감정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가 한 줄의 가사로 위로받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여러분의 삶도 그 한 줄로 따뜻해질지 모릅니다.
by.창밖문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