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실

트로트가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이유

창밖문지기 2025. 10. 29. 23:00

우리 몸과 닮은 리듬

트로트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 다들 있으시죠? 특히 중장년층은 트로트만 나오면 자연스럽게 어깨가 들썩입니다. 이게 단순히 옛날 노래라서 그런 걸까요? 사실 여기엔 과학적인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트로트의 박자는 대부분 4분의 2박자나 4분의 4박자입니다. 이 규칙적인 리듬이 우리 심장 박동수와 비슷하다는 게 핵심입니다. 사람의 심장은 보통 1분에 60~100번 정도 뛰는데, 트로트의 템포가 딱 이 정도거든요. 우리 뇌는 심장 박동 같은 규칙적인 리듬을 느끼면 본능적으로 안정감을 느낍니다. 마치 엄마 뱃속에서 들었던 심장 소리처럼 말이죠.

음악치료학에서는 이걸 '리듬 공명'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몸의 리듬과 음악의 리듬이 하나로 맞춰지면서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해지는 거예요. 트로트 특유의 "따라라~" 하는 반복되는 가락이 불안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이유입니다.

추억 속으로 돌아가는 마법

트로트가 주는 또 다른 힘은 '익숙함'입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듣던 노래, 시골 할머니 댁에서 흘러나오던 라디오 소리, 동네 잔치에서 울려 퍼지던 음악들. 이런 기억들이 트로트 리듬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죠.

심리학에서는 이걸 '정서적 회귀'라고 합니다. 익숙한 소리가 과거의 편안했던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거예요. 트로트를 들으면 뇌의 감정 중추인 편도체가 자극받아서 긍정적인 감정이 솟아납니다. 힘들고 지친 현재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 편했던 그때로 돌아가는 거죠.

중요한 건, 이게 단순히 옛날이 좋아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익숙한 리듬 속에서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연결하면서, 삶의 연속성을 느끼고 정서적 안정을 되찾게 되는 겁니다. 트로트는 그래서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제' 역할을 하는 셈이에요.

함께 흔들면 더 좋아

트로트의 또 다른 매력은 '함께함'입니다. 공연장에서 가수의 장단에 맞춰 자연스럽게 박수 치고, 옆 사람과 어깨동무하며 몸을 흔드는 순간. 이때 우리는 음악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걸 느낍니다.

이런 집단적 경험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큽니다. 같은 리듬에 몸을 맡기면서 '나도 여기에 속해 있구나' 하는 소속감을 느끼게 되거든요. 외로움이 깊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순간들은 정말 소중합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함께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이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줍니다.

예측 가능한 세상의 위로

트로트가 사랑받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예측 가능함'이죠.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불안합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트로트는 다릅니다. 시작되면 어떻게 전개될지, 언제 후렴구가 나올지 대충 짐작이 됩니다.

이 예측 가능성이 주는 안정감이 생각보다 큽니다. 불안한 현실 속에서 적어도 이 노래만큼은 내가 아는 대로 흘러간다는 것. 그 단순하고 반복적인 리듬 속에서 우리는 마음의 균형을 되찾습니다.

삶의 리듬을 일깨우는 음악

결국 트로트는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닙니다. 우리 몸의 리듬과 가장 가까운 음악이고, 감정의 파도를 잔잔하게 다독여주는 음악입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잠시 쉬어가게 해주는, 익숙함 속의 위로인 셈이죠.

그래서 트로트는 여전히 사랑받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음악. 그것은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삶의 리듬을 다시 일깨워주는 음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