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실제의 장소일 수도 있고, 마음속의 풍경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어린 시절 뛰놀던 마당이, 어떤 이에게는 할머니의 부엌이, 또 어떤 이에게는 첫사랑과 걷던 거리가 그런 곳이겠지요. 트로트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향'과 '집'은 바로 그런 보편적 그리움의 상징입니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우리는 어릴 적 냄새, 익숙한 골목, 그리고 기다리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처럼 트로트는 단순한 음악을 넘어, 우리 마음속의 집을 그려주는 정서적 지도와도 같습니다.

트로트의 가사에는 늘 '그리움'과 '돌아감'의 정서가 깔려 있습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고향역", "꿈에 본 내 고향" 같은 노래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단지 슬픔이 아니라, 삶의 뿌리를 다시 확인하게 만드는 정체성의 회복임을 알려줍니다.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면서도 그 끝에는 늘 '기다림'이 있고, 떠남을 이야기하면서도 '돌아올 곳'을 잊지 않습니다. 음악심리학적으로도, 이런 회상과 귀향의 이미지는 현재의 불안을 완화하고 정서적 안정을 주는 감정 회귀 효과(reminiscence effect)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특히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를 겪은 한국 사회에서 트로트의 고향 노래는 상실한 공동체에 대한 집단적 향수를 대변하며, 그 감정의 통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트로트가 만들어내는 '집의 이미지'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서적 안식처, 즉 마음이 머물고 싶은 곳입니다. 노랫말 속 '집'은 늘 따뜻한 불빛이 켜져 있고, 그곳에는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멀리 떠나 있어도,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곳. 그 불변성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상이지만, 노래 속에서는 영원히 존재합니다. 이 이미지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정서적 공동체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핵가족화가 심화되며, 이웃과의 교류가 단절된 시대에 트로트가 그리는 '집'은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따뜻한 관계망을 상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트로트 속 '집'은 실제보다 더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바쁜 일상과 경쟁 속에서 지친 사람들이 트로트를 들으며 잠시 마음을 쉬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트로트의 멜로디는 향수의 정서를 더욱 깊게 만듭니다. 느린 템포와 부드러운 장단, 여운이 남는 음계는 기억 속 감정을 천천히 불러올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트로트 특유의 '꺾기'는 인생의 굴곡을 소리로 표현한 것 같고, 반복되는 후렴구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리듬으로 형상화한 듯 들립니다. 3박자나 4박자의 규칙적인 리듬은 마치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의 덜컹거림처럼, 혹은 어머니가 등을 토닥이는 손길처럼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그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고향길을 천천히 걷는 듯한 평화로움이 찾아옵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과거의 자신과 다시 마주하고, 현재의 자신을 위로받습니다.
심리학적으로 향수(nostalgia)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를 되찾는 정서적 복원 과정이라고 합니다. 트로트를 통해 느끼는 향수 역시 그러합니다. 노래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나는 그 시절의 나로부터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싶다"는 깊은 마음의 움직임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트로트를 들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그 노래가 과거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다독이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상처받고 지친 현재의 나에게 "너는 따뜻한 곳에서 왔고, 그 따뜻함은 아직도 네 안에 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트로트가 다시 사랑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리적 고향이 희미하고, 잦은 이사로 정착의 경험이 적은 이들에게 트로트의 '집'은 오히려 더 강렬한 상상의 공간이 됩니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향수라는 역설적인 감정이 트로트를 통해 표현되는 것이죠. 이는 트로트가 단순히 특정 세대의 음악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담은 그릇임을 보여줍니다.
결국, 트로트가 그려내는 '집'은 단순히 고향집의 풍경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서 잊히지 않는 따뜻함의 기억입니다. 그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언제든 마음이 지칠 때 돌아갈 수 있는 감정의 고향이 되어줍니다. 트로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건 당신의 마음이 아직 따뜻하다는 증거입니다." 그 한 줄의 노랫말이 우리를 미소 짓게 하고, 다시 오늘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건네줍니다. 그래서 트로트 속 '집'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눈을 감고 노래를 듣는 순간,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니까요.
by.창밖프로듀서